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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에세이 vol.1「여행길에 오름의 때」

열여덟 되는 봄, 나의 고향 아마가사끼를 떠나
진학을 하기위해 상경했다.
고향인 오사까에서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나는
부모곁을 떠나지 않으면 나 자신만의 인생은 시작할수없을것 같았다.
무난히 집을 나올 수 있는 구실은 진학뿐이며,
토쿄으로
가는 것만은 정해두었다.
지내기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여기가아닌 다른 곳, 내 자신의
발로 꿋꿋이 살아가야
할 곳을 찾고있었다고생각한다.
어머니와 네 언니들,
식구가 많아서 씨끌벅쩍했지만, 마음 한쪽은 늘 나의 안식처를 찾고있는 나 자신이 있었다.

상경하는 날 , 신오사까의 신간센
플랫 홈에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때의 많은 친구들의 배웅을 받았다.
여느때의 친구, 언제나 곁에 있어준 친구.
편지,선물을 받고,
가마에 오르듯 탄
신간센에서 혼자가 된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축제가 끝난 후의 쓸쓸함이라고 할까.
눈물은 계속 흐르고,
쿄또근처를 지날쯤
벌써 집이 그리워졌다.

가슴을 벅차게하는 정열만이 유일한 이정표였고, 연극과를
지망했지만 그 어떤
보증도 없는 홀로서기였다.

분위기가 고조된 친구들과는 반대로,
어머니는 집을나설때

< 건강 조심하고.
잘 다
녀와> 라는 짧은 인사로 덤덤하게 보내주셨다.
막내 딸인 내가 일곱살때 양친이 이혼, 어머니의 갸날픈몸으로 아버지 몫까지 힘들게
우리 다섯을 키워내셨다.
한참 뒤에 들은 들은 말이지만,
어머니는 나를 보낸 후, 하염없이 우셨단다.
저 아이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언니들에게 말하며.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거지.
한번 집을 떠난 내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것을.

인생에는 여러가지 헤어짐이 있다.
아이들의 홀로서기는 행복한 이별이며,
기쁨도 커지만, 애정이 깊은 만큼 초조함도 엄청 밀려올것 같다.
언젠가 올것이라는 그 날은, 예상보다
빨리오는 법이다.

그건, 물론 나에게도.
내가 엄마로서 느끼게 되는
열 여덟 아들의 홀로서기.

첫째의 분만때 나는 생사의 기로였다.
임신중독증으로 출산예정달보다 한달
빨리 긴급제왕절개로 , 태어난 아기는
겨우 2110g 이였고,. 담당의사선생님이
수술봉합한 직 후 , 나는곧바로 ICU로 옮겨졌다.
소리도 없는 어둠의 세계.
병실을 찾아오는 이는 천사., 가 아닌 간호선생님,그리고 의사선생님뿐.
튜브관이 내몸을 칭칭 감고, 몽롱한 의식인채 하얀 천장을 바라보다가,
( 아아,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에 와있구나)
라고 조용히 느꼈다.
살아있다는것은 정말 굉장한 것이라고
새삼스럽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대로 눈을 감아버리면, 내 가족은 슬픔에 잠길것이리라. 그러나 가장
불쌍한 이는 갓태어난 우리아기겠지.
엄마의 존재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가여워서 카메라를 준비 해서 ,
아기에게 보낼 영상편지를 ICU에서 촬영하였다.
그 때 의사선생님께 가족들은
혈압이 더 높아지면 더이상 손쓸수 없다는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없어도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내 몸으로 깨달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기를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
말로 표현할순 없지만, 그때의 거짓없는 심경이었다.
태어난지 얼마안된 우리아기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먼저 내몸을 감고있는
튜브관을 하나 씩 하나씩 떼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다음은 ICU에서 일반병동으로 가는것을 ,
다음은 혼자서 화장실을 가는 것을 ,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할 수 있는것을 목표로 정했다.
매 순간을 필사적으로 살아갔다.
일반병동에 우리아기와 함께 있을수 있게되었을때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찬란한 생명
앞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도 느꼈다.
우리아기지만 ,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
내가 해야하는 것은 이 아이를 잘 키워
세상으로 보내는 것. 그것은 부모로서의
책임이다.
퇴원 하는 날, 병을 고쳐 주시고 , 또
새 생명을 나에게 맡겨주신 것에 한없이
감사 드렸다.
우리 아들도, 이상적인 가족이라 말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런 역경은 아랑곳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그래, 지금은 말 할 수 있다.

아들은 일본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아이 자신이 정한 일이다.
진정한 그의 인생의 출발이 된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지켜 볼뿐이다.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기.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는것.
그것만을 바랄뿐이다.

그점은 역시 친정어머니가 좋은 본보기다.
어머니의 입버릇은,
「누구 에게도 잘해줘야해.
누구에게도 친절하게 하는거야.
그러면 돌고 돌아서 멀리 떨어져있는
아이들이 좋은 사람과 인연이 닿고 ,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는거야. 」
우리 다섯자매를 키우기 위해 장사를 했을때, 사기나 속임수로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온 팔순 어른은 당할 재간이 없다.
어머니, 이제는 알겠네요, 참말로.

아들을 보낼 때,
「사람과의 만남을 귀하게 여겨야 돼.
늘 조심하고 아무일 없기를 기도할께.
엄만 너 믿어. 」
가까스로 그 말을 하고나니,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억누를수 없었다.
우리아들은 ,
웃는 얼굴로 「괜찮아요. 아버지랑 잘 지내세요. 」 그 말을 남기고, 내일을 향해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부모가 보지않은 곳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이제부터 나의 두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즐겁게 , 천천히 성장해가면서,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야지

2014.8.31